아주 불편한 장면들이 여전하다. 교육 컨퍼런스 말머리에 아직도 90년대 일제식 수업교실 사진으로, 미래교육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캐캐묵은 동기유발은 이제 그만하자. 교사와 교실수업의 목적이 현재는 지식을 가르치는데 있으니, 배움을 유도하는 역할로 바꿔야 한다는 옛말도 그만하자. 할 말만 해도 충분하다. 미안하지만, <권력친화적 이론가들의 미려한 유행감각을 뽐내며 휘둘러대는 화려한 헛발길질>로 현장과 부모가 휘둘리는게 미래교육에 가장 큰 걸림돌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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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치는 말이 소통을 방해한다
‘꼰대’, ‘짜증’ 같은 말이 퉁치는 말이다. ‘속상해’, ‘놀랐다’, ‘당황했다’ 등의 말을 “짜증난다” 한 단어로 퉁친다. ‘박과장님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를 “박과장은 꼰대야” 한 마디로 퉁쳐버린다. 자신의 기분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니, 소통이 제대로 될리 가 없다. “영훈이? 걔는 맨날 짜증만 내서 같은 모둠이 되기 싫어” 라며 내 자신도 퉁쳐서 평가된다. 억울해도 소용 없다. 스스로 퉁치는 말을 습관처럼 사용하다 보니, 그냥 모든 일에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업무에 대한 절차적인 지시사항에도 ‘꼰대’, 내가 잘못해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꼰대’로 퉁쳐서 거부하다 보면, 배워야 할 일도 온전히 배우지 못하고 본받을 만한 사람도 하나 둘 사라지게 된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 배움을 거부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어봤자 좋을게 없다.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점만 배우면 된다. “짜증나, 저 꼰대”라며 퉁치는 말을 입밖으로 내어 누군가 듣게 된다면, 그동안 애써 쌓아왔던 평판이 바람에 재 날리듯 사라져버리게 된다.
‘왕따’라는 말을 버려야 한다.
‘왕따’라는 말은 일본의 ‘이지메’라는 사회문제를 매우(왕) + 따돌림의 뜻으로 전달하기 위해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 말이다. 쉬운 말은 쉽게 인식되고 쉽게 따르게 된다. 집단따돌림은 심각한 행위를 말하는 무거운 말이다. 왕따의 가벼움이 심각한 행위를 가볍게 만든다. 덕분에 왕따를 청소년기 누구든 즐기는 문화나 추억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왕따라는 가벼운 말은 버리고 집단따돌림 같은 무거운 말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