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는 집단따돌림과 다르다.

만약, “우리와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윤석이 기억나? / 아, 우리반 왕따였던 윤석이?” 로 흘러가는 대화에서 별다른 불편함을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도 ‘왕따’라는 신조어의 피해자이다. 이렇게 바꾸어 보자. “우리와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윤석이 기억나? / 아, 우리반 훈이에게 집단따돌림을 당하던 윤석이?”… 대화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가? 윤석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집단따돌림의 가해자였거나, 방관자였거나, 그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는 친구였을 것이다. 학생폭력을 가십거리로 전락시키는 ‘왕따’라는 가벼운 말 대신 ‘집단따돌림’이라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말을 사용하여 대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왕따’라는 말은 집단폭력의 심각성을 추억거리 쯤으로 희석시킴으로써 폭력에 대한 오개념을 형성시키는 비교육적인 언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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